267화

267화 어깨를 잡은 억센 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며 주먹을 뻗었다. 터억,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주먹은 커다란 손에 붙잡혔다. 「(아해여, 싸우러 온 건 아닐 텐데?)」 어둠이 만든 짙은 음영이 걷히며, 새하얀 얼굴이 드러났다. 「(전에도 한 번 살려줬었지. 벌써 잊었나보군.)」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심지어는······ 내가, 죽였던 존재였다. “네가 왜 여기에 있냐?”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여성체인지 남성체인지를 알 수 없는 모호한 얼굴. 유려하게 떨어지는 얼굴선에서 느껴지는 불가해함. 이 존재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니르바나 뫼비우스.” 이미 오래 전에, 녀석은 ‘제4의 벽’에게 잡아 먹혔으니까. * [제4의 벽]에게 먹힌 존재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처음으로 [제4의 벽]이 뭔가를 먹어 치웠을 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보는 그대로다. 이렇게 되는 것이지.)」 니르바나가 조소하며 말했다. 간만에 만난 니르바나는 처음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차이가 있다면, 녀석의 몸에 ‘멸살법’을 이루는 활자들이 족쇄처럼 맴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계속 살아 있었던 건가?” 「(살아 있다고 보긴 힘들어.)」 자세히 보니, 니르바나의 목소리는 니르바나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목소리라고 말해도 될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니르바나가 허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 빌어먹을 벽에 기생해 연명하는 신세니까.)」 그 순간,[제4의 벽]의 경고성이 울려 퍼졌다. 「니 르 바나 말이 너 무 많 아」 니르바나가 피식 웃었다. 그의 눈빛은 씁쓸했으나, 한편으로는 묘한 고양감으로 차 있었다. 나는 도서관을 둘러보는 니르바나의 시선을 따라갔다.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무수한 활자들. 이곳에는, ‘멸살법’의 모든 것이 있다. “이제 원하던 모든 걸 알았겠네.” 「(어떤 존재도 모든 걸 알지는 못한다 아해야. 네가 그런 것처럼.)」 그렇게 말하는 니르바나는, 정말로 불가의 현인(賢人)처럼 보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등장인물 중 누군가가 처음으로, 이 세계의 비밀을 알게 됐다. “기분이 어때? 자기가 소설 속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된 기분이.” 내 도발에 니르바나의 표정이 변했다. 「(소설이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니르바나는 측은한 듯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몇 번인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러나, 끝내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답답해진 내가 채근했다. “뭔데? 말할 거면 끝까지 해.” 니르바나가 가만히 미소지었다. 「(나는 너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는 뜻밖의 말에 당황했다. 「(정확히 말하면 네가 바꾸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너의 의지가 느껴지는 문장들, 말하지 않는 것들을 담는 맥락들을······.)」 “······뭐라는 거야.” 나는 괜히 어색한 기분이 되어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 죽기 직전까지 하나가 되자느니 어쩌니 지껄이던 놈이었지. 「(나뿐만 아니라, 이곳의 모든 존재가 너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곳에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드드드드드! 허공에서 일어난 진동과 함께, 새카만 파편들 몇 개가 천장에서 떨어졌다. 거대한 뭔가가 이쪽으로 굴을 파 오는 듯한 진동. 파편을 주워든 니르바나가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움직이는 게 좋겠군. 여기서 너무 많은 이야길 하는 건 좋지 않아.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니까.)」 내가 뭐라고 묻기도 전에 니르바나는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니르바나의 뒤를 쫓으며, 아까 떨어질 뻔했던 낭떠러지를 돌아보았다. 도서관의 진동은 그 낭떠러지를 주축으로 퍼지고 있었다. “잠깐만, 어디로 가는 건데?” 「(너를 제일 만나고 싶어하는 자가 있다.)」 “뭐? 누구?” 「(000번대의 서가를 정리하는 존재다.)」 ······서가를 정리해? 「(우리라고 여기서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제대로 정리를 안 하면, 네놈도 기억을 제대로 못 떠올리게 되니까.)」 “······잠깐만, 그게 뭔 소리야?” 「(못 알아들었으면 됐다.)」 방향을 틀자, 새로운 서가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도서관은 정말 넓었다. ‘멸살법’은 후반부로 갈수록 생략하는 회차들이 늘어나는데, 아마 이 도서관은 그런 생략 회차들까지 모두 정리해 놓은 모양이었다. 곧 [000~100]이라 적힌 팻말이 눈앞에 나타났다. 「(다 왔군. 그럼 이야기 잘 나누도록.)」 코너를 돌아서자 익숙한 생명체가 그곳에 있었다. 언젠가 본 크기에 비하면 그야말로 ‘미니멀 사이즈’였지만, 그럼에도 틀림없이 내가 아는 그 생명체였다. 바닥에 떨어진 책들을 수거하는 열두 개의 촉수들. 그리고 그 촉수들을 통제하는, 오징어 같은 몸통. 눈으로 추정되는 작은 구멍 위에는 뿔테 안경 같은 것이 얹혀 있었다. “······당신도 있었군요.” 그러자 오징어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열두 개의 촉수들이 동시에 끄륵끄륵 소리를 냈다. 「(가엾은 구도자가 왔구나.)」 꿈을 먹는 자. 언젠가 [암흑성]에서 척준경과 [제4의 벽]의 도움을 받아 물리쳤던 존재. [제4의 벽]에게 삼켜졌던 그 역시, 이 공간 안에 있었던 것이다. “저를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까?” 「(너를 도와주고 싶다.)」 오징어의 입으로 보이는 뭔가가 흐뭇한 형상을 띄었다. 정말이지 이 범종족적인 제스처에는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저한테도 상황을 파악할 시간을 좀······.” 「(시간이 많지 않다.)」 “왜 저를 도와주시려는 겁니까?” 「(네 덕분에 나는 우주의 진리에 도달했다. 숭고한 존재들은 반드시 그 빚을 갚는다.)」 숭고한 존재라. 사실 ‘꿈을 먹는 자’ 쯤 되면 본인을 그렇게 칭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이 오징어는 바깥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을 성좌들을 씹어 먹을 정도로 강하니까. “그럼 하나 물어볼 게 있습니다.” 「(말하라.)」 “이 도서관을 만든 사람은 누구입니까?” 츠츠츠츠츠츳! 순간 엄청난 스파크가 튀며 내 몸이 책장과 충돌했다. 열 두 개의 촉수가 동시에 뻗어 나와 내 몸과 책장을 동시에 붙들었다. 우수수 떨어지는 책들을 보며, ‘꿈을 먹는 자’가 안경을 밀어 올렸다. 「(그것은 질문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다른 질문을 하라.)」 나는 입술을 꾹 깨문 채 생각했다. 지금 ‘멸살법’과 관련된 질문을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그것은 2차 수정본을 읽어도 알 수 있고, 여차하면 다시 이 공간에 와서 관련된 기록들을 읽는 방법도 있을 테니까. 즉, 나는 ‘멸살법’에 기록되지 않은 질문을 해야 했다. 그것도 이 ‘이계의 신격’이 대답할 수 있는 것으로. 질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은밀한 모략가’는 누구입니까?” 츠츠츠츠츠츳! 이번에도 강력한 스파크가 튀었다. 나는 또 몸이 튕겨 나갈까봐 걱정했으나, 다행히 이전보다는 약한 스파크였다. 「(위대한 모략에 대해 궁금한가?)」 촉수가, 아주 천천히 흐느적거렸다. 「(그는 이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 중 하나······.)」 처음으로 듣는, ‘은밀한 모략가’에 대한 정보였다. 「(이 우주에서 가장 고독한 존재이며, 가장 오래된 꿈과 맞서 싸우는 자.)」 “그렇게만 말씀하시면 제가 어떻게 압니까? 제대로 된 수식언이라도 알려―” 「(그에게 수식언 같은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네가 원한다면 그는 너를 도울 것이다.)」 “돕는다고요? 어떻게······.” 「(그와 ‘이계의 언약’을 맺어라.)」 이계의 언약. 그게 무엇인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다섯 번째 시나리오에서 내가 부쉈던 [절대 왕좌] 또한, 그런 언약의 일종이었다. 하지만 ‘멸살법’에서 언약의 끝이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촉수 몇 개가 고개처럼 끄덕거렸다.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 너는 상위 차원의 존재들을 싫어하니까.)」 “당신들의 힘을 빌리면 제가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 수 없습니다.” 「(너는 이제 누군가에게 종속될만한 격이 아니다.)」 기분이 이상했다. 저 지고한 ‘이계의 신격’이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너는 너의 분노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에 도달하기 위해, 네가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을 제대로 고찰할 필요가 있어.)」 드드드드드! 「(세계가 ■■로 향하고 있다. 그것은 아직 쓰여지지 않았지만, 이미 쓰여져 있기도 하다. 그리고 위대한 모략은 그런 너를 도울 수 있다. 네가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전 제가 쌓아온 이야기를 믿습니다.” 드드드드드드! 진동의 간극이 점차 짧아지고 있었다. 내 완강한 의지에 체념한 듯, 꿈을 먹는 자가 말했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시간이 없군. 언제나 모략께서 너를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라.)」 촉수들 중 하나가 나를 휘감았다. 동시에 다른 촉수들이 빠르게 움직여 서가에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가 찾아낸 책은 다음과 같은 책이었다. [유중혁, 3회차 38권의 기록] 책의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갔다.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깨달은 나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아직 물어볼 것이 남았습니다!” 「(잘가게, ■■의 사도여. 개연성이 허락한다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책의 페이지가 펼쳐지며, 백지 위에 실시간으로 문장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유중혁은 생각했다.」 「빨리 깨어나라, 김독자.」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빌어먹을, 이래서야 갈 수밖에 없잖아. 다음 순간, 나는 문장들의 맥락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 전장은 폐허였다. 바닥을 뒹구는 화신들의 시체와, 한걸음씩 다가오는 성좌들의 대열을 바라보며, 유중혁은 피 묻은 입술을 닦았다. 크르르렁! 초월견의 힘을 사용한 파천신군과, 위인급 성좌인 오수의 콤비는 놀라웠다. 그들은 몸이 망가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달려드는 위인급 성좌들을 물고 뜯었다. 덕분에 최전방에서 달려오던 ‘클레오 파트라’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오이디푸스 왕’도 화신체 곳곳을 파먹힌 험악한 몰골이 되었다. 위인급 성좌들을 상대할 때까지는, 제법 할만한 것도 같았다. [추하구나! 저런 벌레들조차 상대하지 못하고서 ‘성좌’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으냐?] 그러나 뒤쪽에서 사태를 관망하던 설화급 성좌들이 나서자,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쿠오오오오오! ‘우레를 먹는 새’가 내뿜은 전격에 신유승의 ‘키메라 드래곤’은 맥없이 추락했고. 콰아아아앙! ‘바나라의 장군’이 내뻗은 주먹에 [강철화]가 산산이 부서진 이현성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몇 번이고 피를 토한 유상아는 어떻게든 전열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것도 한계인 것처럼 보였다. 커어엉! ‘인류의 시조’의 창에 찔린 오수가 비틀거리며 바닥을 기었다. 그런 오수의 화신체를 입에 문 파천신군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25번 시나리오의 개연성이 허락하는 한계치까지 개방된 격. 일백 퍼센트의 힘은 아니라 해도, 지금의 일행들이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강력한 ‘격’이 마계 전체를 눈부신 스파크의 백야(白夜)로 만들고 있었다. 이것이 ‘성좌’라는 존재들의 힘이었다. 이 세계의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오시하는 존재들. 유중혁이 물었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성좌, ‘지고한 빛의 신’이 고요히 웃습니다.] “벌레들에게 패배한 ‘역사’는 갖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그래.” 순간 수르야의 뺨이 미묘하게 씰룩였다. 쿠구구구구구! <로카팔라>의 격이 개방되자, 일대의 모든 성좌들조차 표정이 급변했다. 츠츠츠츠츠츠츳! 과도한 힘의 개방에 수르야의 전신에도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그러나 수르야는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는 듯, 자신있게 기함을 터트렸다. [쿠와아아아아아아!] 그저 단 한 번, ‘격’을 발산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격에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인근의 구조물들은 잿더미로 변했고, 달아나던 화신들은 그대로 영혼을 파괴당했으며, 전방의 일행들은 칠공에서 피를 쏟으며 무너졌다. [일부 성좌들이 시나리오 진행에 불만을 갖습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크게 분개합니다!] [마왕, ‘악마성의 대군주’가 기뻐합니다.] [마왕, ‘불화의 조성자’가 흥분합니다!] [상당수의 성좌들이 간만의 대격전에 들떠 있습니다!] 최전방에서 힘을 감당한 이현성이, 귀와 입에서 동시에 피를 쏟으며 버티고 있었다. 유중혁은 그런 이현성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물러서라, 이현성.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이현성은 반사적으로 뭐라 소리치려 했지만 그마저도 힘겨운 듯 보였다. 비틀거리는 이현성을 뒤로 하고, 유중혁이 피묻은 [흑천마도]를 닦으며 걸어나갔다. 절망적인 상황. 그가 가진 [현자의 눈]은 실시간으로 전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좌들의 숫자만 해도 거의 스물. 위인급 일부를 전력에서 제한다 해도, 도저히 이길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크르르르릉! 「사제여, 안 된다. 그 힘을 개방하면 너는 죽을 수도 있다!」 파천신군은 본능적으로 유중혁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유중혁의 의지는 완강했다. 천천히 힘을 끌어 올리는 유중혁의 전신에서, 막대한 스파크가 튀었다. 츠츠츠츠츠츳! 상대가 안 될 것을 안다. 이길 수 없을 거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건, 늘 그랬다. ―초월형 3단계에 도달하면, 너는 성좌를 능멸할 힘을 얻을 수 있다. 스승이 남겼던 말만이, 지금 유중혁이 믿을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번에는 편법으로 올라선 경지. 하지만 편법이라 해서 그 힘까지 거짓은 아니었다. 고오오오오오! 유중혁의 몸에서 눈부신 아우라가 터져 나왔다. 섬연한 머리카락이 폭포처럼 쏟아졌고, 커다랗던 덩치는 좀 더 작지만 단단하고 날렵한 체구로 변했다. [파천검도]의 궁극을 실천할 수 있는, 완성형의 몸이었다. 뒤쪽에서 그 광경을 보던 유상아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유중혁 씨?” 유중혁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흑천마도]에 의해 잘려 나가는 긴 머리카락. 얼굴의 선이 바뀌었지만, 그것은 분명 유중혁의 얼굴이었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유중혁이었다. 유중혁의 시선이 아주 잠깐 김독자의 얼굴 위에 머물렀다. “데리고 도망쳐라.” 고개를 돌린 유중혁이 다시 [흑천마도]의 칼날을 정성껏 닦아냈다. 그런 그를 비웃는 듯한 성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이디푸스 왕이 입을 열었다. [어리석은 초월좌여. 이것이 성좌들의 연회에 낀 대가다. 너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여전히 칼날을 닦으며, 유중혁이 대답했다. “그렇겠지. 하지만 너희들 중 누군가도 죽을 거다.” [하하하, 소용 없다! 어차피 화신체의 소멸은······.] 유중혁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대신, 유중혁은 김독자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번 생을 포기하지 말라던 그말. “그리고 다음 생에는, 너희들 중 절반이 죽을 것이다.” 고요히 전장을 울리는 유중혁의 목소리. 짙은 어둠을 머금은 [흑천마도]와 함께, 유중혁이 고개를 들었다. 성좌들의 걸음이 처음으로 멈춰섰다. 사납게 타오른 초월좌의 마력이 위협적으로 주변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 다음 생에서는, 너희 모두가 죽을 것이다.”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해진 [흑천마도]가 울었다. 완전히 표정이 굳은 성좌들을 향해, 유중혁이 말을 맺었다. “너희는, 영원히 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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