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135화
유중혁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아는 놈들이야?”
“한 놈은.”
유중혁이 구원교를 알고 있다?
하긴, 2회차에도 이 녀석들을 만나긴 했을 테니까.
그리고 구원교라면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원작에 따르면, 구원교는 구원(救援)이라는 단어가 갖는 종교적 상투성을 완전히 벗어던진 집단이었다.
「“내세에 구원은 없다.”」
구원교의 첫 설법은, 그것으로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이야기이며, 우리가 해방시켜야 할 것은 바로 ‘오늘’이다.”」
얼핏 들으면 그들의 교리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중요시하라.
멸망이 오기 전에도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였다.
구원교 무리는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며 거대한 세력을 이끌고 당도했다. 거친 울음을 토하는 코끼리들은 모두 7급 괴수종인 [사막 가시 코끼리]. 저들 중에도 ‘길들이기’가 가능한 녀석이 있는 것이다.
“오, 오오······.”
“구원교다!”
그 화려한 등장에 화신들이 환호를 보냈다.
나는 조금 긴장했다.
한참 뒤에야 나올 구원교가 벌써 나타났다.
그렇다는 것은, 누군가가 내가 아는 미래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존재가.
선두에 위치한 코끼리 위, 가마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화신들이여. 구원교로 오라. 우리가 너희를 시나리오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다.”
그 말에 선두의 구원교도들이 화신들을 향해 품을 벌렸다. 쭈뼛대던 화신들 몇이 앞으로 나섰다.
“······시나리오 해방이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다. 너희에게 시나리오에 능멸당하지 않을 자유를 주겠다.”
여전히 알 듯 모를 듯한 말이었지만, 화신들을 유혹하기엔 적절한 단어들이었다.
해방이라든가, 자유라든가.
준비된 화신들도 있었지만, 이곳에 강제로 투입된 대개의 화신들에게 그것은 달콤한 말들이었다.
“구, 구원교에 들어가면 강해질 수 있습니까?”
벌써 넘어간 화신들이 있는가 하면, 신중한 화신들도 있었다.
‘구원’이라는 막연한 말보다는 당장의 무력을 믿는 자들.
“강함이라······.”
코끼리 위의 가마 속에서 그림자가 움직였다. 목소리에 깃든 현기 때문인지 성별이 분간되지 않았다.
“‘강함’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시선이 집중되자, 얼굴이 붉어진 남자가 말을 더듬었다.
“히, 힘이 세거나, 그러니까······ 강한 스킬을 갖거나! 그런 거 말하는 거 아닙니까?”
“강한 힘과 강한 스킬이라······ 이런 거 말이냐?”
가마에서 서서히 뻗어 나온 마력이 거대한 손바닥의 형태를 이루었다.
마력 실체화.
웬만큼 수련한 귀환자나 쓸 수 있는 저 기술이, 한낱 시나리오의 화신에 의해 구현되고 있었다.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손바닥’을 향해 반감을 드러냅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거대한 손바닥이, 하늘을 덮으며 사내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우, 우와아아악!”
압도적인 마력의 향연에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손바닥이 화신들을 덮는 순간, 가공할 바람과 함께 손바닥의 형상은 사라졌다. 대신, 화신들을 감싸는 따스하고 온화한 기류만이 남았다.
“덧없는 것을 추구하는구나. 강함과 약함은 모두 이야기가 만든 허상일 뿐인 것을.”
가마의 휘장이 걷히며 허공으로 뭔가가 떠올랐다.
마치 환한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전신에서 빛을 내뿜는 존재.
신이 강림하듯, 빛은 바닥에 가뿐히 착지했다.
그제야 나도 깨닫는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내가 아는 그 ‘구원 교주’가 벌써 시나리오에 들어왔을 줄이야.
강함을 부르짖던 화신이 주춤거리면서도 입을 열었다.
“무, 무슨 개소리를······ 그래서 당신 밑에 들어가면 강해질 수 있는 거냐고!”
인자한 웃음 속에서 구원교주가 말했다.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의, 의미가 없다니?”
“시간의 더미에 갇힌 불쌍한 중생아. 너는 지금 이야기에 속고 있는 것이다.”
턱, 하고 구원교주의 손이 화신의 이마에 가 닿았다.
“말해 보아라. 누가 너에게 ‘강함’을 부추겼느냐? 어째서 그리 강해지고 싶어하는 것이냐?”
마치 홀리기라도 한 듯,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 그건······ 가, 강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고······.”
“살아남는다는 건 무엇이냐.”
“살아남는 건······ 살아나는 거지! 그래서 또 강해져서, 다시 살아남고······.”
사고가 정지하기라도 한 듯, 바보 같은 돌림 노래.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가장 정직한 대답이었다.
“그것이 네 삶이냐?”
“무, 무슨······?”
“온종일 강해지기 위해 살아가야 한다면, 너의 ‘삶’이란 대체 어디 있는 것이지?”
마치 알아서는 안 되는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화신의 몸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내 삶은······ 어?”
사내의 눈동자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내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인간은 불가해한 감정과 맞닥뜨리면 강제로 해답의 아귀를 맞추려 든다. 모두가 압도된 듯한 고양감 속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저 상황을 해결해주길 바라는 것처럼.
이윽고 구원교주가 사내의 눈물을 닦아 주었을 때, 몇몇 사람들이 탄식을 터뜨렸다.
“그것이 바로 이야기의 함정이다.”
허공을 올려다보자, 도깨비들이 재미있다는 듯 그 말을 듣고 있는 것이 보였다. 구원교주가 말했다.
“미래에 잡아먹히지 마라.”
그 한 마디의 선언이, 모든 화신의 가슴에 쐐기로 박히고 있었다.
“언젠가 찾아올 내세의 구원에 속지도 마라.”
신규 시나리오로 진입한 모든 화신들이 홀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 말을 이해했든 이해하지 못했든, 이제 그것은 하나의 울림이 되어 모두의 가슴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구원교주는 계속해서 말했다.
“구원은 지금 바로 여기에 있고, 네가 있어야 할 곳도 이곳이다.”
지금을 살고 현재를 지키는 것.
미래에 먹히지 않고 인간의 긍지를 되찾는 것.
“바로 이곳에서 투쟁하라!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로 자신을 남겨라! 그것만이 이 ‘시나리오’에서 해방 될 길이다!”
듣기로는 아름다운 사상이었다.
그걸 말하는 게 ‘구원교주’가 아니었더라면 그랬을 거란 소리다.
나는 유중혁을 돌아보았다.
“유중혁.”
마침 유중혁도 칼을 뽑는 중이었다.
그의 얼굴에 사나운 적의가 번지고 있었다.
“거창한 헛소리로 자살 특공대를 양성하는 방식은 여전하군.”
유중혁의 말에, 구원교주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유중혁이 말을 이었다.
“적당히 하고 꺼지는 게 좋을거다, 구원교주.”
“······너는?”
순간 광대한 기파가 주변을 잠식한다 싶더니, 어느새 허공에 붕 뜬 구원교주가 이쪽을 향해 천천히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하늘하늘한 가그라(Ghagra)가 선녀옷처럼 흩날렸다. 구원교주가 말했다.
“유중혁?”
왜일까.
구원교주의 아름다운 얼굴에 새하얀 미소가 번졌다.
“유중혁!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아느냐?”
이제까지 어떤 화신을 만났을 때보다도 강한 경호성이 머릿속에 울렸다.
원작에 따르면 본래 저 인물이 등장하는 건 한참이나 뒤의 얘기다.
그렇기에, 나는 저 자에 관해 아무런 대비도 해두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곧바로 ‘등장인물 일람’을 발동했다.
[전용 스킬, ‘등장인물 일람’이 발동합니다!]
[해당 인물의 관련 정보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등장인물 일람’이 ‘요약 일람’으로 변환됩니다.]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해당 인물의 관련 정보가 여전히 많습니다. ‘등장인물 요약 일람’이 다시 한 번 요약을 시도합니다.]
[정보 요약에 실패하였습니다.]
[해당 인물의 관련 정보는 요약 일람이 불가능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소리였다.
정보 요약이 불가능하다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해당 인물의 ‘첫 번째 특성’만을 일람하게끔 설정을 바꾸었다.
[일람 설정이 변경되었습니다.]
+
<등장인물 요약 일람>
인물 : 니르바나 뫼비우스
특성 : 환생자(還生者) (전설)
+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빌어먹을, 역시 이 녀석이 맞았구나.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번째 방법.
눈앞의 인물은, 그 세 번째 방법 ‘그 자체’인 존재였다.
환생자 니르바나.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자.
“유중혁!”
기쁨에 겨워 외치는 목소리.
다가오는 놈의 모습을 보며, 손바닥이 긴장감에 젖어갔다.
저 녀석의 사고 방식은 보통의 인간과는 다르다.
아무리 내가 ‘멸살법’을 읽었어도, 놈을 이용할 수 있는 범주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자신의 품을 활짝 벌린 니르바나가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유중혁! 나와 하나가 되어라!”
순간, 놈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 감이 왔다.
*
처음 ‘이 세계’에 눈을 떴던 순간을, 니르바나는 똑똑히 기억했다.
우습게도, 그때 니르바나는 물방개였다.
‘······.’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니르바나는 개구리에게 먹혀 죽었다.
다음 삶에서 니르바나는 개구리로 태어났다.
‘쉽지 않은 삶이겠군.’
그 삶에서, 니르바나는 방울뱀에게 먹혀 죽었다.
다음 삶에서 니르바나는 방울뱀이 되었다.
‘적어도 개구리는 먹을 수 있겠군.’
그 삶에서, 니르바나는 아나콘다에게 먹혀 죽었다.
다음 삶에서, 니르바나는 아나콘다로 태어났다.
‘모든 뱀을 먹어버리겠다.’
그 삶에서, 니르바나는 강력한 괴수종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들에게 사냥 당할 위기에 놓였다. 보상에 눈이 먼 인간들이 그를 해치려 들었고, 니르바나는 큰 상처를 입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니르바나는 사냥꾼들을 피해 숲 속으로 은신했다.
하지만, 결국 한 남자의 눈에 띄고 말았다.
“······다친 모양이군.”
왜일까. 남자는 그를 보고서도 해치지 않았다.
남자는 그의 상처를 돌보아준 후 숲에다 그를 풀어주었다.
니르바나는 그 선의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대신 오래도록 남자의 손길을 기억했다.
그리고 다음 삶에서, 니르바나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성좌, ‘만다라의 수호자’가 당신의 삶을 지켜봅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관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이 ‘배후성’이라 불리는 대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건 보다 나중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니르바나는 계속 인간으로 태어났다.
뛰어난 농부가 되거나, 그런 농부들을 이끄는 농장주가 되었고.
병졸이 되거나, 그런 병졸들이 존경하는 소드마스터가 되었고.
노예가 되거나, 그런 노예들을 부리는 귀족이 되었다.
수없이 많은 죽음을 거쳤고, 수없이 많은 삶을 살았다.
수없이 많은 시나리오를 거쳤다.
그리고 오직 자신만이, 이 우주에서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직 나만이, 모든 기억을 가지고 환생한다.’
그 사실이 그를 지독하게 외롭게 만들었다.
외로웠기에, 그는 더 열심히 삶을 즐겼다.
마치 다시는 살아나지 못할 것처럼.
오직 이 번 ‘한 번’만이 전부인 것처럼 살았고.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언제나 혼자서 다시 살아났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메시지가 들려왔다.
[당신은 거대한 시간의 바퀴에 걸려들었습니다.]
[당신의 윤회 회로가 시간의 바퀴에 종속됩니다.]
[‘만다라의 수호자’가 당신의 운명을 가엾게 여깁니다.]
[당신은 ‘제 8612 행성계’의 시나리오에 참가하였습니다.]
니르바나는 한 남자와 마주하게 되었다.
‘유중혁.’
그는 처음으로, 자신처럼 삶을 반복하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비록 그 형태는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영원의 수레바퀴에 구속된 존재.
‘너는 나와 같다.’
단지 그것만으로, 니르바나는 어떤 전율적인 구원을 받았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자신을 이해해 줄 유일한 존재.
‘지난 생에는 실패했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구원교주는 유중혁을 향해 다가가며 외쳤다.
“유중혁!”
불쾌하다는 듯 물러서는 유중혁을 보며, 니르바나는 더욱 더 짙게 웃었다.
거대한 톱니에 걸려들어 유중혁의 ‘시간’ 속에 들어섰던 그날부터, 니르바나는 오직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유중혁! 나와 하나가 되어라!”
“개소리말고 꺼져라. 죽여버리기 전에.”
까칠한 유중혁의 태도에도 니르바나는 웃었다.
이제는 저 앙탈 조차 귀엽게 느껴진다.
‘나를 싫어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나를 원하는 것을 안다. 너는 내 힘을 필요로 한단 말이다!’
지난 번에는 녀석을 배려해주다가 일을 망쳤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니르바나는 계속해서 외쳤다.
“내가 너를 도와주마! 지난 번의 실패를 잊었느냐? 오직 나만이 너를 구할 수 있다! 그 억겁의 톱니바퀴에서, 내가 너를 해방······.”
“너 같은 놈은 필요 없다.”
“뭐?”
망연한 목소리로 되묻는 니르바나에게, 유중혁은 자신의 곁을 흘끗 바라보더니 다시금 말을 이었다.
“동료는 이미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