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125화 단 세 발의 총탄에 야마모토의 숨은 끊어졌다. 무슨 웨스턴 카우보이라도 되는 것처럼 입김을 불자, 이복순의 손가락 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정말 터프한 할머니다. [명성을 가진 재앙이 사멸하였습니다.] [재앙 ‘식민주의자’를 처치하였습니다.] [5000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주요 공헌자 : 이복순, 김독자] 뱀을 잡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총리를 사냥한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소득이었다. 앞으로 있을 대군전에서 총리의 부재는 일본군의 승세를 크게 꺾을 것이다. 거기다 보상도 아주 짭짤했다. [일부 성좌들이 당신의 과도한 민족주의 정서에 반감을 가집니다.] 내 시나리오에 불만을 표하는 성좌들도 많았지만, 어쩔 수 없다. 한반도에서 민족주의는 코인이 된다. 할 수 없이 이야기를 팔아야만 한다면, 그래도 비싼 값에 파는 게 낫지. [한반도의 상당수 성좌들이 당신의 재현(再現)에 갈채를 보냅니다.] [10000코인을 후원받았습니다.] 역시, 아직 옛날을 못 잊은 성좌들이 제법 있다니까. 당황한 일본인들이 야마모토를 향해 달려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초, 총리님!” 그사이 나는 십여 미터 떨어져 있는 이복순을 향해 달려갔다. 이복순의 몸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등장인물 ‘이복순’이 ‘재앙’으로서의 권리를 완전히 포기하였습니다.] [<스타 스트림>의 도깨비들이 ‘이복순’의 행위를 시나리오 대적 행위로 간주하였습니다.] [소인화(小人化)가 시작됩니다.] 이복순은 부쩍 지친 얼굴이었는데, 아무래도 ‘세 발의 총탄’을 사용한 후유증이 큰 듯했다. 특정인에게 즉살 효과를 낼 수 있는 성흔은, 사용한 화신에게도 심각한 육체적 정신적 데미지를 입힌다. 때문에 그녀는 성흔을 사용한 직후부터 완전히 탈진해버린 상태였다. “젊은이, 나 좀 업어주어.” “일단 주머니 속에서 옷 좀 걸치세요.” 아까 소인종들을 구해주고 답례로 받은 옷이 몇 벌 있었다. 나는 할머니를 코트 왼쪽 주머니에 넣은 후, 이지혜를 시켜 할머니가 옷을 입으시게 도왔다. [「바람의 길 Lv.8」을 활성화합니다.] 책갈피의 남은 시간은 10분. 이제 10분 안에, 숲 지대를 빠져나가야 한다. “총리님이 죽었다!” “저놈들 막아!” 일본인들이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질렀다. [2차 시나리오 페널티를 받았습니다.] [5분 안에 ‘소인종’을 사냥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스타 스트림>은 당신에게 재앙 활동의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젠장. 10분이 아니라 5분인가.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날 데려가 줘요!” 야마모토가 죽으며 떨어트린 새장 안에서 일본인 여자가 외쳤다. “제발요! 제발!” ······아스카 렌. 망설임은 없었다. 처음부터 데려갈 생각이었으니까. 나는 질풍처럼 튀어나가 새장을 박살 낸 후 그녀를 손안에 넣었다. “고마워요! 정말······.” 나는 인사를 생략하고 양다리의 근육을 팽팽하게 긴장시켰다. “꽉 잡아요.” 전력을 다한 마력 운용. 바람이 갈라지며 ‘가장 빠른 길’이 보였다. 양다리에 휘감긴 바람의 기운이 근육의 세밀한 움직임까지 포착하며 최적의 속도를 만들어 냈다. [식민화]가 사라졌기에 아까보다 달리기는 편했지만, 페널티 효과로 능력치가 절반으로 깎여 있어서 만족할만한 속도가 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30 남짓의 민첩으로 이만한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을 보면, [바람의 길]이 대단한 스킬이기는 하다. 아스카 렌이 말했다. “정말 빠르군요. 일본에서도 이 정도 속도는 카라스나 낼 수 있을 텐데.” 카라스라면 아마 ‘카라스 텐구’를 말하는 거겠지. “전력을 내면 그쪽이 더 빠를 겁니다.” “······카라스를 알고 있나요?” “빠르기로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요괴잖습니까.” 바람의 길을 극성까지 익히면 카라스 텐구보다도 빠르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게다가 [바람의 길]은 내 스킬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책갈피]는 어디까지나 시간 제한이 있으니까. “죽여버려! 어차피 곧 작아진다!” “작아진 놈들은 우리가 책임질 테니까 그냥 죽여!” 이제 일본인들도 더이상 망설이지 않고 살수를 발했다. “총리님의 복수다!” 표창 두어 개가 아슬아슬하게 어깨를 스쳐 갔다. 이대로면 위험하다 싶었는데, 갑자기 눈앞의 지형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주변의 나무들이 일제히 꿈틀대며 달리던 숲길의 모양을 변형시켰다. 쿠드드드드. 숲 지대의 모양이 변하고 있었다. 마법인가 싶었는데, 아스카 렌이 말했다. “밤이에요. 조심하세요!” 뒤늦게 ‘멸살법’의 언급이 떠올랐다. [피스 랜드]의 숲 지대는 밤이 되면 모습이 변한다. 일종의 미로화가 발생하는 것인데, 말하자면 숲 자체가 거대한 괴물의 위장처럼 변하게 되는 것이다. 발을 딛는 곳마다 끈적한 소화액이 분출되고 있었다. [피스 랜드]의 소인들이 이 숲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한밤에 숲 지대에 들어간 소인들 중 살아 돌아온 소인이 없기 때문이었다. “쫓아라!” “우아아악!” 숲의 위장운동이 시작되며, 나를 쫓아오던 몇몇 일본인들도 길을 잃은 듯했다. 물론 저렇게 커다란 ‘재앙’들은 숲이 소화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시간 벌이로는 충분했다. [3분 안에 ‘소인종’을 사냥하십시오.] 최선을 다해 달렸지만, 미로처럼 변한 숲 지대는 내 방향감각을 조금씩 마비시켰다. ‘멸살법’에도 밤의 숲에서 탈출할 구체적인 방법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대신······. “이쪽이에요!” ‘멸살법’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피스 랜드]에서 첫 번째로 얻어야 할 사람은 ‘아스카 렌’이다.」 나는 아스카 렌의 지시에 따라 방향을 틀었다. “저 나무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달려요!” “······일본인 처자, 길을 아는 건가?” 일본어가 능통한 이복순이 묻자, 아스카 렌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이 숲에 대해서라면 잘 알아요.” “흘흘, 관련 스킬이 있는 모양이지?” “······네.” 나는 아스카 렌의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 숲에서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은 길 찾기 스킬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아마도 ‘피스 랜드’에 관한한, 그녀는 내가 ‘멸살법’을 아는 것만큼이나 전문가일 것이다. 아마, 일본인들도 그런 이유로 소인화된 그녀를 살려둔 것일 테지. 나는 아스카 렌의 인도를 받아 [바람의 길]을 최고조로 운용했다. 달음박질은 점점 더 빨라졌지만, 시간은 그보다도 빠르게 나를 쫓아왔다. [1분 안에 ‘소인종’을 사냥하십시오.] 조금만, 조금만 더. 휘이익! 파바밧! “잡아! 놈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 몇 번인가 길이 뒤틀리는 사이, 쫓아오는 일본인의 숫자는 부쩍 줄었다. “다 왔어요!” 그리고 마침내 숲 지대가 끝났다. [당신은 제한시간 내에 ‘소인종’을 사냥하지 못했습니다.] [<스타 스트림>의 도깨비들이 당신에게 ‘재앙’ 활동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당신에게 3차 시나리오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소인화가 시작됩니다.] 젠장. “모두 나한테서 떨어져요!” 내 외침과 함께, 뭔가를 눈치챈 일행들이 내 몸에서 벗어났다. 누군가가 착즙기에 내 몸을 넣고 돌려 짜는 듯한 느낌이었다. 전신에 힘이 빠져나가며 꽈드드득, 소리가 귓전을 천둥처럼 울렸다. 다시 눈을 깜빡였을 때, 시야는 거의 바닥에 들러붙어 있었다. ······이게 소인들의 기분이었군 그래. 다행히 코트는 내 몸의 크기에 알맞게 함께 줄어들었다.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비롯해서 코트의 아공간 속에 아이템들을 모두 넣어 두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아이템도 없었다. 문제는 다시 꺼낼 때인데······. “아저씨, 괜찮아요?” 나는 일행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살짝 떨어진 곳에서 내 눈치를 보고 있는 아스카 렌을 향해 말했다. “아스카 렌 씨.” “······제가 자기 소개를 했던가요?” “다른 일본인들이 알려줬습니다. 그보다 제 일행들을 부탁합니다. 이들을 ‘베로니카 왕성’까지 데려다주세요.” 내 말에 아스카 렌의 눈동자가 커졌다. 내가 어떻게 [피스 랜드]의 지명을 알고 있는지 놀란 거겠지. “설명할 시간 없으니, 부탁합니다. 이곳은 제가 막겠습니다.” “······알겠어요.” 헉헉거리는 숨 소리와 함께 숲길 속에서 일본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끝까지 쫓아온 일본인은 총 셋. 높이가 달라지니, 갑자기 놈들이 괴물처럼 보인다. “망할 조센징 놈들!” 하나라면 일행들과 합세해 어떻게든 잡아볼 생각이었고, 둘이면 고민을 좀 했을 것이다. 그런데 셋이라······. 소인화가 진행된 일행들이 전력을 다해 달려들어도 저들을 이길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이현성이 말했다. “혼자 두고는 못 갑니다.” “가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살아요. 저 혼자라면 몸을 뺄 방법이 있습니다.” 미로화 된 숲을 헤쳐오느라 만신창이가 된 일본인들이 퉤, 하고 바닥에 침을 뱉더니 이쪽을 향해 잔인한 미소를 머금었다. “벌레처럼 짓밟아 주지.” 나는 다가오는 놈들을 보며 외쳤다. “길영아!” 기다렸다는 듯, 이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공에서 작은 곤충들이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모두 나중에 봅시다.” 곤충들은 하나둘 일행들을 등에 태우기 시작했다. 아마 곤충의 속도라면 내가 시간을 끄는 동안 이들로부터 어느 정도 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잠깐만요! 아저씨!” 신유승의 외침과 동시에 사무라이의 칼날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콰과곽! 칼날은 내 바로 곁을 스치며 바닥에 꽂혔다. 윙윙거리며 터져 나온 마력의 파장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굴렸다. 인간일 때는 별거 아닌 놈들이었는데, 지금은 칼끝에 닿기만 해도 위험했다. 아마 간단히 두 쪽으로 쪼개질 것이다, “죽어!” 이복순으로 총리를 잡는 것까지는 계획에 있었지만, 지금부터는 나도 구체적인 대책이 없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다가 다시 숲의 미로 속으로 달아나거나, 아니면······. “이놈은 내가 죽인다. 나머지를 쫓아!” 셋 중 둘이 고개를 끄덕였고, 곤충에 탑승한 일행들을 쫓기 시작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성흔, ‘비폭력지대 Lv.1’을 사용하였습니다!] 달려가던 일본인들이 우뚝 멈췄다. “젠장, 또······!” 발이 묶인 일본인들이 짜증 난다는 듯 내 쪽을 돌아보았다. 소인이 되면서 마력량도 현저하게 줄어버렸기에, 겨우 세 명의 움직임을 봉쇄하는데도 상당한 정신력이 소모되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왔고, 피가 쏠린 코안에서 희미한 열기가 흘러나왔다. [성좌, ‘민족의 독립운동가’가 당신에게 가호를 내립니다.] 메시지와 함께, 잠깐이지만 성흔의 사용 마력이 줄어들며 몸이 편해졌다. 머릿속에서 성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손이여, 부름에 응하는 것은 이번뿐입니다.] “······고맙습니다, 열사.” [역사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록되는 것. 사사로운 개인의 영달을 위해 과거를 초환(招還)하지 않도록 하세요.] 아무래도 과도한 연출을 위해 위인급 성좌들을 이용했다는 게 들킨 모양이다. 거기다가 [비폭력지대]를 폭력을 행하기 위해 썼으니, 화를 낼 법도 하지. 나는 간신히 고개만 끄덕인 후 초조하게 주변을 살폈다. [‘비폭력지대’의 사용 시간이 30초 남았습니다.] 비폭력지대가 끝나는 순간, 전력을 다해 숲 지대로 달려가야 한다. 강력한 마력을 휘감은 칼날들이 나를 두쪽으로 쪼개기 위해 벼르고 있었다. ······아마 여기서 죽지는 않겠지만, 잘못하면 중상을 입을 수도 있겠는데. 15초, 14초, 13초······. 그리고 문제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성좌, ‘디펜스 마스터’가 당신의 한심함에 개탄합니다.] ······응? 익숙한 성좌의 이름에 고개를 갸웃하던 순간. 기이이잉― 하는 기계음이 일제히 울려 퍼지더니, 이내 폭발적인 총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등장인물 ‘공필두’가 성흔 ‘무장요새 Lv.1’을 발동합니다!] 두두두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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