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화
450화
비형은 몹시 들떠 있었다. 눈앞의 화면에서 펼쳐진 시나리오를 직접 목격한 도깨비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나도 최선을 다해 맞서 싸울 테니까.
김독자의 목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시나리오 종료 메시지. 수많은 성좌들의 간접 메시지가 폭발하고, <스타 스트림> 전체가 진동하고 있었다.
거대 설화 『서유기』의 새로운 주인이 가려졌다.
‘해냈다. 김독자 그 녀석이 해냈어.’
이야기꾼은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어떤 심판이든 속으로는 응원하는 팀이 있게 마련이고, 비형 또한 마찬가지였다.
장성한 자식을 보는 부모처럼, 비형은 감동한 얼굴로 화면의 얼굴들을 쓸었다.
[축하드립니다, 비형 국장님.]
주변의 부하 도깨비들이 비형을 향해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그들 역시 비형이 오랫동안 <김독자 컴퍼니>를 지켜보아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도 그들이 해낼 줄 알았습니다.]
[저, 저도. 저도요······!]
심지어 그와 함께 <김독자 컴퍼니>를 응원해온 도깨비들도 있었다. 실제로 몇몇 도깨비들의 표정은 비형만큼이나 상기되어 있었다.
오직 자극만을 소재로 좇는 도깨비들이 무언가에 이토록 진심이 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얘들 내 거다. 넘보지 마라.]
[하핫! 그야 당연히······.]
긴급 소식이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국장님, 대도깨비 ‘바람’께서······.]
[승격입니다!]
······승격이라고?
[비형 국장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관리국이 모처럼 제대로 일을 하려나 봅니다!]
쏟아지는 메시지 속에서 비형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은 ‘상급 도깨비’인데다 서울 지부의 국장이었다. 이미 노력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대치까지 올라온 상황.
그런데 여기서 또 승격을 한다는 것은······.
[······국장님?]
분명, 이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일까?
[대도깨비께서 기다리십니다.]
비형은 하급 도깨비들의 안내를 받아 포탈을 탔다.
뿌연 안개가 걷히며, 회색빛 통로에서 그를 기다리는 대도깨비 바람의 모습이 보였다.
[왔는가, 비형.]
[바람님.]
그는 수고했다는 듯 비형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축하하네. 자네의 승격이 결정됐네.]
[······예?]
[얼빠진 표정 좀 어떻게 해보게. 실감이 안나는 건가? 자네를 마지막 ‘대도깨비’로 뽑자는 결정이 났단 말일세.]
대도깨비. 모든 이야기꾼이 갈망하는 궁극의 명예. 막연하게 상상하고만 있던 상상이 실제가 되자 비형은 얼떨떨했다.
[······대도깨비? 제가 말입니까?]
[그렇다네. <스타 스트림>의 역사 어디에도 없는 전무후무한 승격이지.]
바람은 흘흘 웃으며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비형은 어디로 향하는지 영문도 모르는 채 그를 따라갔다. 묻고 싶은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곳은 대체 어디고, 또······.
[곧 대도깨비가 될 테니, 이제 그분을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 마음을 안다는 듯 바람이 웃었다.
[그분이라 하심은······.]
되물으면서도, 비형은 그게 누구일지 예상하고 있었다.
주변의 공기가 뒤틀리고, 대기 중에 들끓는 희미한 스파크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스파크는 모두 활자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이 앞에 무언가가 있었다. 지금껏,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존재가.
[다 왔네.]
회랑을 돌아 안개의 통로를 지나치자, 커다란 전당이 나타났다.
아니, 그것을 전당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 크기를 측량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홀이었다. 홀에는 널따란 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벽 또한 처음과 끝을 잴 수 없는 너비였다.
벽의 표면에는 활자들이 들끓고 있었고, 곳곳에는 금이 가거나 크고 작은 손상이 있었다.
순간, 비형은 저 벽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계시의 판?]
계시의 판. 틀림없었다. 그 모양은 달랐지만, 성좌들이 ‘계시’를 얻는 그 벽 또한 저런 형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시의 판’이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게다가 저 크기는······.
[모두 모였군.]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비형은 자기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동안 무수한 성좌들과 마주한 비형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긴장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격의 끝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곁을 돌아보자, 바람을 비롯한 모든 대도깨비들도 앞을 향해 부복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계시의 판’ 앞에 서 있었다.
비형은 떨림을 감추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비형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런가······ 그렇구나.
저 존재가 바로 이 <관리국>을 지배하고 <스타 스트림>을 통제하는 단 하나의 절대자.
‘이야기의 왕’.
길고 흰 손으로 부서진 벽면을 어루만지던 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음 세계를 결정할 ‘단 하나의 설화’를 뽑겠다.]
*
“내가 ‘최후의 벽’의 마지막 파편을 가졌다고?”
“그렇다.”
[41]의 목소리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대충 무슨 말인지는 짐작이 갔다. ‘최후의 벽’. 이번 회차를 진행하는 내내, 나는 그것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해왔다. ‘멸살법’의 원작에서는 끝까지 풀리지 않았던 소재. 아마도 그 ‘벽’이, 이번 회차의 마지막을 결정할 단서일 거라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녀석들이 말하는 ‘마지막 파편’이란······.
[전용 스킬, ‘제4의 벽’이 강하게 발동합니다!]
「김 독 자」
걱정 마. 녀석에게 절대 너를 넘기지는 않을 테니까.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정신을 집중했다. ‘은밀한 모략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격을 많이 상실했다곤 해도, 여전히 눈앞의 존재는 내가 아는 최강의 성좌이자 ‘이계의 신격’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은가이의 숲’에 왔던 날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일전에 그런 이야길 했었지. ‘신성한 삼문답’이 끝났을 때, 나는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고.”
【그렇다.】
“너는 사실 이 세계의 끝을 보고 싶은 거야. 그렇지? 말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너 역시 이 세계선에 희망을 걸고 있는 거라고.”
‘은밀한 모략가’의 눈썹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가 아무리 자신이 유중혁임을 부정해도, 유중혁의 버릇까지 버리진 못했다.
“그리고 그걸 위해 내가 가진 [제4의 벽]을 필요로 하는 거고. 너는 그래서 나를 지금까지 살려뒀던 거다. 맞나?”
‘은밀한 모략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오겠다면 내게도 생각은 있다.
츠츠츠츠츳.
“그때 마지막 ‘삼문답’을 듣지 못했어.”
[‘신성한 삼문답’이 재개됩니다!]
[당신에게 하나의 질문권이 남아 있습니다.]
그때, 나는 ‘은밀한 모략가’에게 물었었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은밀한 모략가. 당신은 그 소설의 에필로그를 아는 존재인가?
“은밀한 모략가. 당신이 보았던 ‘결말’은 대체 뭐였지?”
내가 본 ‘멸살법’은 3149화가 끝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지 못했음에도 ‘은밀한 모략가’는 그 이후를 살았다. 기록되지 않은 시간을, 그는 살아남아 자신만의 결말에 도달했다.
그는 그곳에서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을 보았기에, ‘이계의 신격’이 되어 이 세계선에 나타나게 된 것일까.
내 질문에 먼저 나선 것은 [41]이었다. 그는 약간 화난 얼굴로 나를 향해 외쳤다.
“그 질문은······!”
【41.】
‘은밀한 모략가’의 제지에, 다른 꼬마 유중혁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소년의 모습을 한 유중혁. ‘은밀한 모략가’가 나를 보고 있었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멸살법’의 어디에도, 유중혁의 소년 시절은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저, 회상의 형태로만 간간이 묘사될 뿐이다.
하지만 그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없었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마치 ‘멸살법’의 3150화와 같았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유중혁은 태어났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멸살법’의 주인공이 되었다.
【네가 읽은 책에서는 내 행적이 어디까지 묘사되지?】
내가 모르는 얼굴의 주인공이, 묻고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네가 도깨비 왕에게 가는 순간까지.”
나는 ‘멸살법’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도깨비 왕을 죽이기 위한 여정. ‘최후의 안개’를 헤쳐나가며, 유중혁의 이야기는 마지막 페이즈로 돌입한다. 그 뒤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가 그 후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이 없었다.
당시 연재분을 읽다가 당황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열린 결말인가 싶어 두려웠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지?】
뜻밖의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설마하니, 이런 것들을 물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건 왜······.”
【성공한 것처럼 보였나? 그 끝에서,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알 수 없는 갑갑함이 찾아왔다.
어째서 ‘은밀한 모략가’가 저런 질문을 내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대답하든, ‘은밀한 모략가’에게 그 일들은 모두 이미 일어난 것이었다.
거기에서 내 감상은 조금도 중요치 않았다. 조금도······.
······정말, 중요치 않을까?
“너는······.”
나는 간신히 입술을 달싹거렸다.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도 대답해야만 했다.
「그 순간, 그녀는 그 세계가 완전히 자신의 손을 떠났음을 깨달았다.」
[피스 랜드]의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의 세계를 떠나보내던 만화가 아스카 렌의 표정. 하나의 세계를 만든 사람의 책무.
나는 그녀처럼 ‘멸살법’을 만든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독자님 덕분이니까요.」
그 이야기를, 끝까지 지켜본 사람이었다.
“넌 성공했어. 최선을 다했으니까.”
이 대답은 그 이야기를 끝까지 지켜본 사람의 의무였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모든 문장들을 찬찬히, 성실하게 떠올렸다.
“어느 회차였든 마찬가지야. 너는 항상 최선의 선택을 했어. 네가 도달한 결말이 무엇인진 모르지만, 그건 틀리지 않았어.”
유중혁의 모든 회차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유중혁이 얻은 것들, 그리고 잃은 것들.
“네 동료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홀로 남아, 최종장에 도달한 그 뒷모습까지.
“하지만······.”
내가 이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모르겠다.
“네 마지막 모습은, 왜인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어.”
지금도, 내가 읽었던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모든 것을 잃은 유중혁이 안개를 바라보았다. 그가 찾아온 공허한 해답이, 저 안개의 너머에 있었다.」
그 장면에 드러난 묘사와 정확히 같은 얼굴의 ‘은밀한 모략가’가,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렇군.】
“······갑자기 그건 왜 물은 거지?”
【궁금했다. 너만이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존재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부여한 내 삶의 의미가 궁금했다.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