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화
4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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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페이즈 경보>
―3분 뒤 ‘최초의 꼬리짓’이 시작됩니다.
―‘최초의 꼬리짓’은 묵시룡의 부활재해(復活災害)입니다.
―‘최초의 꼬리짓’은 <스타 스트림>의 4분의 1을 궤멸시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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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스트림>의 4분의 1이 궤멸한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페이즈 정보였다.
그런데 시나리오 메시지를 읽은 성좌들은 여전히 긴가민가 하는 투였다.
[4분의 1이 죽어? 관리국도 농담을 할 줄 아는군.]
[도깨비놈들도 뻥카가 늘었다니까.]
이곳의 성좌들 대부분은 시나리오를 진행하기보다는 시나리오를 관람하는 데 익숙한 자들이었다.
자신의 삶을 위로받기 위해 다른 이의 이야기를 착취하는 존재들.
그들은 도깨비들의 고객이었고, 그렇기에 관리국이 그들 모두를 절멸시킬 시나리오를 만들 턱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 세계의 어떤 이야기는, 관객조차도 시나리오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것을.
대기권 너머에서 힘을 비축하는 묵시룡을 향해, 성좌들이 일제히 도약했다.
[거대 설화는 우리 것이다!]
성좌들의 눈동자에서 탐욕이 내비쳤다.
「묵시록의 최후룡」은 ‘성마대전’을 대체하는 시나리오.
만약 여기서 ‘묵시룡’을 쓰러트릴 수만 있다면, 그들은 최강의 ‘거대 설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 움직임에 조급해졌는지, 기존 성운의 성좌들도 일제히 대기권으로 도약했다.
[성좌, ‘새벽 별의 여신’이 자신의 격을 해방합니다!]
[성좌, ‘야차신왕’이 자신의 격을 해방합니다!]
가장 먼저 나선 이들은 ‘새벽별의 여신’ 바카리네와 ‘야차신왕’ 쿠베라였다.
[성운, <수호의 나무>가 소속 성좌들에게 개연성을 할당합니다!]
[성운, <베다>가 소속 성좌들에게 개연성을 할당합니다!]
멀어지는 성좌들을 보며 일행들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우리도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절대로 안 됩니다.”
나는 신신당부하듯 말했다. 부나방처럼 뛰어든 성좌들을 제외하고, 연식이 오래된 대부분의 성좌들은 우리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이 싸움의 결과를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시치미를 뚝 뗀 채 상황을 지켜보는 메타트론에게 물었다.
“메타트론. ‘묵시룡의 봉인구’를 만들 겁니까?”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메타트론이 온화하게 웃었다.
[물론 그럴 겁니다. 1863회차에서도 그랬으니까요. 세상에 악이 도래했으니 이제 모두를 구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몇 시간 전까지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대치했던 건 까맣게 잊었는지, 메타트론의 눈빛은 거의 성스러운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예전부터 이상한 낌새를 느끼긴 했는데, 이렇게 보니 진짜로 미친 것 같다.
“그 계획이 성공하면 당신도 목숨을 잃을 텐데요. 그러면 세상에 ‘선’은 사라질 겁니다.”
[제가 사라지는 것이지, 선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벽창호와 얘기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섰다.
뒤쪽에서 비유만큼 작아진 ‘심연의 흑염룡’과 그런 흑염룡을 쓰다듬고 있는 한수영이 보였다. 지친 흑염룡이 허공을 향해 작은 불길을 토했다.
한수영이 말했다.
“김독자.”
“왜.”
“너 뭐 얘기 안 한 거 있지?”
나는 잠깐 멈칫했다가 되물었다.
“뭔 소리야?”
“아니, 수상하잖아. 평소의 너라면 정보부터 다 공유하고 시작했을 텐데······ 너 이번 시나리오에 대해선 왜 정확히 말을 안 해?”
눈을 가늘게 뜬 한수영이 나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이길 방법이 있기는 한 거지?”
“있어.”
“확신할 수 있어? 또 이상한 방법 쓰려는 건 아니고?”
“이상한 방법이 뭔데?”
한수영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홱 그었다.
내가 웃으며 답했다.
“걱정마. 안 그럴 거야.”
하지만 한수영은 전혀 납득한 얼굴이 아니었다. 말을 보탠 것은 신유승이었다.
“아저씨, 그럼 저 성흔은 왜 켜놓은 거예요?”
[성흔, ‘희생의지 Lv.8’이 발동중입니다!]
내가 만든 유일한 성흔이, 허공에서 메시지를 띄우며 일행들의 몸에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정희원이 말했다.
“······그거 이제 끄면 안 되나? 아까부터 계속 거슬리는데.”
“게다가 성흔 레벨은 또 왜 이렇게 높담······.”
이지혜도 투덜거렸다. 나는 변명하듯 말했다.
“이건 그냥 여러분들의 힘을 증폭시키려고 켜둔 것뿐이에요. 진짜로 이상한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자 이길영이 끼어들었다.
“근데 그 성흔, 동료를 위해 희생하려 할 때만 발동하는 거잖아요.”
“아저씨 지금 우리 속이려는 거지?”
“설마 독자 씨 또······.”
일행들에게서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격에, 주변의 성좌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유중혁이 칼을 뽑고 있었다.
나는 다급히 묵시룡 쪽을 가리켰다.
“잠깐만요. 지금 그런 거 신경 쓰실 때가 아닙니다. 저기 재밌는 구경거리 있으니까 다들 저거 보세요.”
유성처럼 뻗어 나간 성좌들의 꼬리가, 마침내 묵시룡의 지척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제 저 친구들, 다 죽을 거예요.”
“다들 준비해라. 곧 시작된다.”
유중혁도 [흑천마도]를 뽑으며 말을 이었다.
“놈의 꼬리짓은 총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강력한 재앙인만큼, 세 번에 걸친 충격파가 날아올 거다.”
“세 번이나 온다고요?”
이지혜의 물음에 내가 대신 첨언했다.
“충격파는 시발점에서 가까울수록 상쇄가 쉬워. 그리고 처음 두 번은 죽어라 노력하면 버틸만한 정도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중요한 것은 ‘세 번째 충격파’다.
그리고 그것을 막아내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 죽고 <스타 스트림>의 4분의 1이 날아갈 것이다.
멀리서 성좌들과 묵시룡이 충돌하는 것이 보였다. 바카리네가 쏘아 보낸 빛의 파랑이 묵시룡에게 직격했고, 쿠베라의 거환도가 묵시룡의 등을 베었다. 묵시룡의 꼬리가 움직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최초의 꼬리짓’이 시작됩니다!]
[‘첫 번째 충격파’가 발현합니다!]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멀리서 새파란 빛이 터졌다. 그것이 고도로 응축된 스파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차후의 일이었다. <스타 스트림>의 개연성을 너무나 끌어쓴 까닭에, 후폭풍 그 자체가 되어버린 파멸의 전격.
저것이 바로, 묵시룡의 꼬리가 만든 ‘첫 번째 충격파’였다.
[이깟 것, 이깟 것 따위―]
반항하는 쿠베라가 소리쳤고, 놀란 바카리네가 소리를 질렀다. 묵시룡에게 도전한 수십 명의 성좌들이 동시에 자신의 격을 방출했다 그리고.
뭔가가 부서졌다.
[성좌, ‘새벽별의 여신’이 소멸했습니다.]
[성좌, ‘야차신왕’이 소멸했습니다.]
[성좌, ‘깊은 밤의 늑대’가 소멸했습니다.]
[성좌······.]
빗발처럼 쏟아지는 간접 메시지들.
일대의 별들이 대폭발을 일으키며 동시에 산화하고 있었다.
이지혜가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게 버틸만하다고?”
나도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나 역시 실제로 꼬리짓을 목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성좌들을 불태우며 체구를 더욱 불린 전격파는 이제 <스타 스트림> 전역으로 뻗어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 우리가 있었다.
[미친, 달아나!]
겁에 질린 몇몇 성좌들이 몸을 틀었다.
하지만 지금 달아난다고 달아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나는 진언으로 소리쳤다.
[모두 진정하세요. 막아낼 방법은 있습니다.]
[미친 소리 하지마! 저거 못 봤어?]
[꼬리짓이 만든 충격파는 같은 속성의 격으로 흡수하거나, 반대 속성의 격으로 무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걸 버틸 개연성만 있다면 말입니다.]
번져오는 전격파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가속이 붙은 전격파가 이내 우리를 삼켜버리겠다는 듯 탐욕스런 이빨을 드러냈다.
[모두 비켜라.]
그리고 앞으로 나온 성좌가 있었다.
전신에 눈부신 번개를 두른 그 성좌는 자신의 성유물인 거대한 망치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나는 오딘의 아들, 목요일의 천둥.]
그는 언젠가 미식협에서 만났던 ‘목요일의 천둥’, 토르였다.
[이곳에서 묵시룡의 천둥을 묻겠다!]
성유물 묠니르에 내리치는 벼락이 꽂혔다. 바이킹 같은 기상으로 달려나간 그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묵시룡의 전격파에 몸을 던졌다.
츠츠츠츠츠츳!
놀랍게도 그는 전격파를 견뎌냈다.
몰려오던 전격파의 대부분이 그의 망치 묠니르에 쏠리고 있었다. 번개를 받는 피뢰침처럼 그의 몸이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아스가르드>의 모든 성좌들이 토르에게 개연성을 빌려주고 있었다.
[오오오오오오오―!]
얼마 지나지 않아 토르는 전신의 혈관이 불거지고 충혈된 눈이 튀어나왔다. 조각 같던 근육이 전격으로 새카맣게 물들고 있었다. 첫 번째 충격파는 꼬리짓 자체가 아니라 꼬리짓에서 비롯된 부산물에 불과했다. 그런데 고작 그 부산물만으로, 설화급 성좌가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견디지 못한 토르가 마침내 망치를 놓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 망치를 함께 잡았다.
[······북유럽 신화에는 별 흥미가 없었는데, 제법이군.]
그는 전혀 뜻밖의 성좌였다. 토르가 경악하며 외쳤다.
[놔라! 네놈 따위가 잡을 수 있는 망치가 아니다! 네놈은 번개를 다룰 수도 없지 않느냐!]
[나도 조금은 할 수 있어. 아버지가 번개의 신이거든.]
번개의 좌의 계승자.
제우스가 떠난 후 디오니소스가 <올림포스>의 계승자가 된 게 맞는 모양이었다. <올림포스>에서 번개의 격을 계승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제우스의 후계 뿐이니까.
[설화, ‘번개의 사육제’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언젠가 내가 물려받을 수도 있었던 그 설화가, 디오니소스의 전신에서 용솟음쳤다. 허리춤에 찬 포도주를 벌컥벌컥 들이켠 디오니소스가 짜릿한 비명을 질러댔다.
[끄아아아아― 좋다!]
번갯불에 지져지면서도 디오니소스는 웃었다. <아스가르드>와 <올림포스>의 합작. 동료 성좌들이 몰아준 설화의 힘으로 그들은 버텼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범람하는 묵시룡의 격은 이내 두 성운을 합한 것보다도 더 커졌다. 수르야가 침음했다.
[이럴 때 인드라가 있었다면······ 그 동네북이 그리워질 줄이야.]
원작에서도 첫 번째 충격파는 번개의 삼신에 의해 중화된다.
그런데 하필 <김독자 컴퍼니>가 인드라를 쓰러트리는 바람에, 그 삼신 중 하나였던 인드라의 자리가 공석이 되고 말았다.
[번개를 다룰 수 있는 성좌는 더 없는가!]
본래 여기서 나설 생각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제가 돕겠습니다.”
[‘마왕화’를 발동합니다!]
나는 번개의 성좌는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걸 사용할 수는 있다.
[5번 책갈피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전용 스킬, ‘전인화(電人化) Lv.23(+13)’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현재 당신의 육체 구성이 해당 등장인물의 육체 구성과 상이합니다.]
[당신의 ‘격’이 육체 조건의 패널티를 극복합니다.]
전신을 휘감은 백청의 무공. 나는 눈부신 전운을 흩뿌리며 토르와 디오니소스의 곁에 합류했다.
[거대 설화, ‘마계의 봄’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거대 설화, ‘신화를 삼킨 성화’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두 개의 거대 설화가 나를 지지했고, 전격의 폭풍이 나를 덮쳤다.
이걸 짜릿하다고 말하다니, 디오니소스는 제정신이 아니다.
[한 잔 하면 버틸 만 해. 마실래?]
그렇게 말하는 디오니소스는 이미 하반신 전체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이미 숯검댕이가 되어버린 토르가 낄낄 웃었다.
[구원의 마왕, 여기서 같이 죽게 생겼군.]
[너랑 같이 죽는다면 그것도 괜찮은 이야기가 되겠어. 다 같이 널리 남는 구전 설화가 되자고.]
[흠, 그럼 그건 <아스가르드>의 설화인가, 아니면 <올림포스>의 설화인가?]
[헛소리들 그만하시고 집중하시죠.]
손바닥부터 아득한 고통이 밀려왔다.
나는 토르, 그리고 디오니소스와 함께 밀려오는 전격을 둑처럼 막아섰다.
이윽고 첫 번째 충격파의 속도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이것만 버티면 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지만 충격파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우리가 밀리는 속도가 더 빨랐다.
디오니소스 소리쳤다.
[빌어먹을, 넘친다―!]
여기서 전력이 방전되면, 뒤쪽의 동료들은 모두 끝장나고 만다.
그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우리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동료들에게 피하라고 외치려는 바로 그때.
누군가의 손이 무너지려는 우리의 둑을 받쳤다.
······전격의 신이 또 남아 있었나?
세계 광포 설화에는 전격을 다루는 존재가 제법 있으니······ 하지만 당장 떠오르는 이름은 없었다. 심지어 전격을 흡수하는 속도가 나는 물론이고 토르와 디오니소스의 그것을 상회하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성좌가······.
[수련을 게을리 한 모양이구나. 아직 이 정도 전격도 받아내지 못하는 수준이라니.]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놀란 토르가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너 같은 성좌는 처음 보는데.]
그 말에 고고한 격이 물결치며 분노를 토해냈다.
보통 미남은 얼굴이 작다고들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세계에 이 사내보다 미남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성좌가 아니다.]
멍청하게도, 잊고 있었다.
이 <스타 스트림>에서 가장 전격을 잘 다룰 수 있는 존재는 성좌가 아니라 바로 이 사내라는 것을. 허공에 흐트러진 하늘빛 머리카락에서 영롱한 백청의 전격이 폭발했다.
[나는 키리오스 로드그라임. 이 게으른 제자 녀석의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