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343화
츠츠츠츠츠······!
망가졌던 영혼에 스파크가 튀며, 어머니의 영혼체에 조금씩 활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방랑자들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까다로운 감식안으로 어머니의 설화 파편들을 이어 붙였다.
“이건 그때네. 다들 기억하지?”
다수의 사람들이 그려내는 단 하나의 초상(肖像).
그 광경은 단 하나의 완전한 예술품을 조각하기 위해 모인 장인들의 연회처럼 보였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내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어떤 시선은 존재를 죽인다.
시나리오가 시작된 후, 많은 성좌들의 시선 앞에 화신들은 죽어갔다. 노출당하고, 관음당하고, 욕망을 강요당하면서.
하지만 누군가를 살리는 시선도 있다.
“······아, 이때 그립네.”
“수경 씨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치?”
그립다는 듯 중얼거리는 방랑자들의 목소리.
어쩌면 우리는 평생을 살며 한두 사람에게는 기억의 대가(大家)가 되는지도 모른다.
[성좌, ‘하늘의 서기관’이 켜켜이 쌓이는 설화의 정경에 순수하게 감탄합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크게 기뻐합니다!]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알 듯 모를듯한 표정으로 머리털을 뽑습니다.]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투덜거리며 자신의 화신을 바라봅니다.]
채널의 점검이 끝난 모양인지, 성좌들이 비유의 채널로 모여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 속에 내 어머니가 완성되고 있었다.
어머니였던 이수경.
방랑자들의 왕이었던 이수경.
수감소의 혁명가였던 이수경.
에세이 작가였던 이수경.
그 많은 ‘이수경’들이 모여 ‘이수경’이라는 전체를 이루어 갔다.
내가 어정쩡하게 서 있자, 한수영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방해되니까 나가 있어.”
······확실히, 한수영도 지난 3년간 어머니와 함께 있었던 만큼 어머니의 설화에 지분이 있는 거겠지.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병실을 빠져나왔다.
어차피 설화의 수복은 거의 끝나가는 상황이었고, 나는 더 도울 일이 없어 보였다.
조금 불안하지만, 그래도 저 녀석도 작가니까······ 어머니를 망쳐놓진 않겠지.
뒤쪽으로 낮게 읊조리는 한수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이때 말했던 건가? 모르겠다. 맞겠지, 뭐.”
······제발 괜찮아야 할 텐데.
병실 밖으로 나오자, 일행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
“독자 형!”
나는 달려드는 두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일행들을 둘러 보았다.
정희원도, 이지혜도, 침대차에 묶인 이현성도······. 모두가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따로 뭔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상황을 알고 있는 듯했다. 내게 매달린 신유승이 물었다.
“할머니는요? 수경 할머니는 괜찮으세요?”
“아마 괜찮을 것 같아. 거의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거든.”
내 대답에 일행들의 표정에 한줄기 안도가 스쳤다. 무거운 짐 하나는 던 얼굴들이었다.
“야, 독자 형 엄마가 왜 네 할머니냐?”
“아저씨 엄마니까 나한텐 할머니지.”
“독자 형은 네 아빠 아니거든?”
나는 재빨리 녀석들의 등을 토닥였다.
“자자, 싸우지 말고. 둘 다 할머니라고 하면 되잖아.”
“진짜요? 그래도 돼요?”
“그럼.”
얼굴이 발갛게 물든 이길영과 신유승을 보며, 나는 뭔가를 더 말하려다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이 아이들에게, 지난 3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나 없이 수십 개의 시나리오를 헤쳐 오면서, 이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어떤 이야기를 살았을까.
“······형?”
내가 한참이나 이길영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자, 이길영이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노려보던 신유승이 내 손을 빼앗아 자신의 머리 위로 얹었다.
나는 두 아이를 가만히 품에 안으며 말했다.
“미안하다.”
“······네? 뭐가요?”
“그냥, 다.”
지금 당장 무슨 이야기를 해도 용서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어쩌면 어머니의 설화가, 내게 영향을 끼친 것인지도 모른다. 제 때에 말하지 못해서 생긴 비극들을, 더이상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입술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고생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괜찮아요.”
신유승이, 먼저 말했다.
“우린 괜찮아요, 아저씨.”
고개를 든 신유승이 나를 보고 있었다.
위로해야 할 사람은 이쪽인데, 괜찮냐고 물어야 할 사람은 이쪽인데.
“아저씨도······ 괜찮은 거죠?”
차마 그 말에 답할 수가 없어서, 나는 신유승의 시선을 피했다.
고개를 들자, 일행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지혜는 울컥한 얼굴이었고, 정희원은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나는 애써 입술을 움직여 웃었다.
“왜들 그렇게 보세요? 저 괜찮습니다. 어머니도 회복됐고요.”
“진짜 괜찮은 거예요?”
“정말 괜찮습니다. 그리고······.”
나는 일행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몸 곳곳에 남은 상처에서 그들이 달려온 시간이 느껴졌다. 거대 설화 <기간토마키아>가 끝나자마자, 이들은 제일 먼저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그 승리의 여운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한 채로.
“<기간토마키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
내 표정이 뭔가 우스웠는지, 정희원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로 보너스는 다 퉁치는 거예요? 독자 씬 진짜······ 우리가 착하니까 여기서 일해주는 거지······.”
곁에서 이지혜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희원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왜 또 혼자 도망갔어요? 진짜 죽고 싶어요? 아니면 또 감금당할래요?”
“그게, ‘양산형 제작자’께서―”
“변명은 됐고요.”
나는 일단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다. 해명 같은 건 나중에 해도 되니까. 허리를 숙이자 눈에 띄는 낡은 배틀 부츠가 보였다. 부츠를 따라 올라가자, 뿌연 흙먼지가 묻은 검정색 코트의 사내가 보였다.
갑자기 기분이 새삼스러웠다.
내가 아는 그 ‘유중혁’이, 이곳에 속해 있다는 것이.
“유중혁, 너도 고생―”
“한심한 이야기나 늘어놓을 시간은 없다. 아직 다 끝난 것도 아니니까.”
유중혁은 특유의 무시무시한 눈길로 이쪽을 일별하고는 병동 반대편 복도를 향해 걸어가 버렸다.
역시 유중혁은 어디 있든 유중혁인 모양이다.
“다들 한가해 보인다? 야유회 왔어?”
병실의 문을 열고 한수영이 등장했다. 꽤 마력을 많이 소모한 모양인지, 녀석의 표정에는 피로감이 묻어 있었다.
“어머니는?”
“화신체가 깨어나려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병증은 완전히 치유됐어. 나머지는 시간에 맡겨야지.”
“고생했다.”
“유상아는?”
“의원들이 경과 지켜보고 있어. 아일렌 나오면 바로 처치 시작해야지. 성유액 조금 남았지?”
아일렌은 말했다.
이번에 살릴 수 있는 건 한 명뿐이라고.
“바로 이동하죠.”
뒤따라 나온 아일렌이 의료팀을 데리고 곧장 병실을 옮겼다.
그런데 유상아의 침실에서, 우리는 낯선 광경과 마주했다.
“······설화 씨?”
어쩐지 이설화가 보이지 않는다 싶었는데, 하얀 가운을 입은 그녀가 유상아를 돌보고 있었다. 착각일까. 유상아의 설화 파편이 부서져 가는 속도가 미미하게나마 줄어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된 거죠?”
“중혁 씨가 준 약을 좀 써봤어요.”
“유중혁이 약을 줬다고요?”
이설화는 말없이 탁자 위에 놓인 작은 병을 내려다보았다. 이전에는 없었던 병이었다. 유리병에 손을 대는 순간, 아이템 정보가 눈앞에 떠올랐다.
“······공청석유(空淸石乳)?”
나는 깜짝 놀랐다. 이 공청석유가 내가 아는 ‘공청석유’가 맞다면, 그건 적어도 성유액에도 비할 수 있는 희귀 아이템이었다. 존재 자체가 베일에 싸인 <제 0무림>에서 흘러나왔다는, 무림 최고의 영약(靈藥)중 하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올라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런 걸 어디서 구했답니까?”
“파천검성님께 받았다고 해요.”
파천검성은 아직 지구로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간만에 자신의 동족들과 재회했으니 늦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파천검성이 공청석유를 갖고 있었다는 건······ 설마 ‘그 섬’에 갔던 건가?
유상아의 상세를 살피던 아일렌이 말했다.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었네요.”
“어느 정도나?”
“삼십 분 정도요.”
“지금이라도 다른 성유액을 더 획득한다면······.”
“이미 성유액으로 회복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에요. 임계점을 넘겼어요. ······솔직히 아직까지 테마가 손상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에요. 정말 이분의 정신력은······.”
이어진 아일렌의 말에, 일행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무슨 소리예요?”
“상아 언니가 죽는다고요?”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일행들이 의원들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창백해진 정희원과, 안색이 새파래진 아이들.
이지혜는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아저씨, 거짓말이지? 그치?”
“······.”
“상아 언니가 죽는다고······ 방법이 없는 거야? 진짜로? 전혀? 그럼 우리가 지금까지 뭐 때문에······.”
유령처럼 비틀거리며 다가온 이지혜가 나를 흔들며 말했다.
“아저씨는 몇 번이나 죽었다 살아났잖아! 지금이라도 그런 특성을 얻는다든가―”
지금 그런 특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이지혜를 뒤에서 안아 말린 정희원이 내게 물었다.
“혹시······ 그때 썼던 방법은 불가능한가요?”
그때 썼던 방법.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허공의 비유를 보고 있었다.
“어렵습니다.”
“이번에 명계의 후예가 됐다면서요. 그쪽의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는 건가요?”
“이미 해봤습니다.”
그 와중에도, 허공에서 몇 번인가 간접 메시지가 들려왔다.
이 상황을 이용하고 싶은 몇몇 성좌들의 메시지였다.
[성좌, ‘불사를 꿈꾼 시황제’가 당신에게 제안합니다.]
[성좌, ‘불사를 꿈꾼 시황제’가 자신과 계약하면 지금 당장 ‘불로초’를 제공하겠다고 말합니다.]
불사를 꿈꾼 시황제······ 중국의 그 ‘왕’인가.
‘불로초’라면 확실히 성유액이나 성유과에도 비견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저걸 쓴다고 해도 유상아는 이제 회복될 수 없다.
「괜한 짓 말아요.」
그 순간,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손을 빌리면, 반드시 여러분들께 말도 안 되는 대가를 요구할 거예요.」
유상아가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화신체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모두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테마만을 남겨둔 채 이미 절반 이상이 흩어진 영혼이, 일행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고 있었다.
「여러분.」
유상아가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저 괜찮아요. 그러니까······.」
오늘 하루만 괜찮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듣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괜찮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에게, 대체 어떤 시간을 거쳐서 나온 말인지.
「길영아, 누나 괜찮아. 울지 마. 유승이도.」
유상아가, 일행들에게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욱신거리는 심장을 안고 벽에 기대어 섰다.
정희원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희원 씨. 난 희원 씨가 참 좋아요. 알죠?」
「그리고 지혜야······.」
후두둑 후두둑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지혜가 서럽게 울며 침대보를 그러쥐었다. 붉어진 눈동자가 나를 간절히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서, 까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독자. ‘이계의 신격’과 계약해.”
내 팔을 붙든 한수영이 말했다.
“그러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니, 내가 계약하겠어. 내가―”
「한수영 씨.」
한수영의 입술이 덜덜덜 떨렸다.
「이제 안 그러기로 했잖아요.」
내 팔을 놓은 한수영의 고개가 떨어졌다. 듣기 싫다는 듯, 문을 박차고 나가는 한수영. 유상아는 계속해서 말했다. 마치 남은 말들을 모두 쏟아내려는 사람처럼.
「현성 씨나 중혁 씨한테도······ 해줄 말이 있는데······ 이제 힘이 별로 남질 않았네요.」
「아직, 하고 싶은 말, 이 남았는데······.」
그리고 유상아가 나를 바라보았다.
기대선 벽에서 몸을 떼자, 화신체에 난 상처들이 욱신거렸다.
휘청, 세계가 흔들렸다.
하지만, 이제는 일어서야 했다.
“다들.”
그 말을 하는 순간, 머릿속에 지끈 통증이 일었다.
[‘제4의 벽’이 당신에게 경고합니다.]
「안 돼」
나는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다들, 잠시 나가주십시오.”
모두 영혼을 잃은 사람들 같았다. 죽어가는 것은 오히려 유상아인데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정희원이었다. 나와 잠시 시선을 교환하던 정희원이 이지혜를 일으켰고, 그녀의 독려 하에 사람들이 하나둘 방을 빠져 나갔다. 마지막으로 신유승과 이길영까지 빠져나가자, 방에는 나와 유상아만이 남았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
“유상아 씨. 언젠가 지하철에서 했던 말들······ 기억하십니까?”
유상아는 대답이 없었다.
“책 읽는 거 좋아한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답 없는 유상아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레이먼드 카버, 한강······.”
유상아가 좋아한다고 말한 작가들의 이름을 읊었다.
유상아의 표정이 조금씩 변하는 게 느껴진다. 어쩌면 사라져가는 먼 기억을 더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그런 작가들 말고, 다른 책도 읽으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한순간, 유상아의 영혼에 빛이 돌아왔다.
「······어떤 책이요?」
“「반지의 제왕」 같은 책이라든가.”
유상아의 영혼체가 쿡쿡 웃었다. 마치 오래된 추억을 소환하듯, 희미하게 미소짓는 유상아의 영혼이 말했다.
「······좋아요. 읽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다시······.」
그 소중한 말을, 나는 한 음절도 빠짐없이 모두 기억했다.
「다시 살아서, 그 모든 이야기를 읽을 수만 있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방법이 통할지 아닐지는 모른다.
원작에서 이런 일은 시도된 적조차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츠츠츠츠츳!
엄청난 스파크와 함께, 허공에 ‘벽’이 나타났다.
나는 막다른 길목의 너머를 바라보듯 [제4의 벽]을 응시했다.
누구라도 이런 벽을 길의 끝에서 마주하게 된다면 절망하게 될 것이다.
“제4의 벽.”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을 것 같은 두터운 벽.
세상에 ‘벽’만큼 인위적인 축조물은 없다. 누군가가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만든 물건.
이 벽이 정확히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최초의 ‘벽’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내가 입을 여는 순간, [제4의 벽]도 동시에 입을 벌렸다.
“삼켜. 단 한 문장도 빼놓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