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119화
내 말에, 방랑자들의 왕이 희미하게 웃었다.
“오랜만이라니? 지난번에도 봤잖니.”
“그땐 그냥 지나쳤으니까요.”
지금까지 방랑자들의 왕을 본 것은 총 두 번이다.
첫 번째는 한수영과 함께 인외종 송민우를 해치웠을 때, 두 번째는 범람의 재앙을 해치웠을 때.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방랑자들의 왕이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역시, 여전한 얼굴이다.
“언제 출소하셨어요?”
“좀 됐어.”
우리는 잠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엄마와 나는 전혀 닮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30대 후반으로밖에 안 보이는 얼굴.
어렸을 때는 사촌 누나가 아니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러니까, 아직 아빠가 있었을 적에는 말이다.
“서울에 살고 계셨어요?”
“잠깐 아는 사람 만나러 왔어.”
“아하, 그래서 우연히 서울 돔에 갇히셨다······?”
“그래.”
“출소도 하셨는데 죄수복은 왜 다시 입으셨어요?”
“글쎄. 속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랄까?”
“······속죄? 당신이?”
“인간은 모두가 죄수란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감옥이 있는 법이지.”
나는 어머니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저 뻔뻔한 말투.
정말이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정도는 해줘도 되지 않니? 내가 없었으면 곤란했을 텐데.”
······확실히, 도움은 됐다.
어머니는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북쪽의 재앙을 처치했으니까.
아무리 약한 재앙이었다 해도, 대단한 일이다.
사실 제대로 해줄 거라 믿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를 증오하는 만큼, 어머니를 잘 알고 있으니까.
“모처럼 만났는데 반갑다는 내색조차 없구나.”
“정말 그런 걸 바라세요?”
“조금은.”
[전용 스킬, ‘거짓 간파 Lv.1’이 발동합니다!]
[당신은 해당 발언이 거짓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우습다.
거짓일 걸 알면서도 굳이 확인 해보는 내 처지가.
“그 와중에 살아남으셨다니, 대단한 생존력이시네요.”
“네가 들려준 이야기 덕분이지.”
“······역시 그랬군요.”
“교도소까지 엄마를 만나러 와서 자기가 읽은 소설 이야기만 하는 건 너 하나뿐일 거야.”
분명 그랬다.
교도소에서 주어진 면회시간 내내, 나는 한 번도 어머니와 제대로 대화해 본 적이 없었다.
면담 시간 나는 ‘멸살법’에 관한 이야기만을 떠들었고.
그것마저 지겨워졌을 때, 나는 면회를 그만두었다.
“그것 말고는 할 얘기가 없었으니까요.”
“그럴 리가 있어?”
“그 소설이 제 전부였어요.”
잠깐이지만 과거의 잔상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멸살법이 없었더라면, 그 이야기를 끈덕지게 연재해준 작가가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 나는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던 10대의 김독자에게, 유일하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그 이야기뿐이었으니까.
“고작 삼류 판타지 소설······.”
“결국 그 덕분에 살아남으셨으니, 그 삼류 소설에 고마워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우리는 잠시 입을 다문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흥미진진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묘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슬픈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내 쪽이었다.
“무슨 특성을 얻으셨죠? 아마 제가 들려준 얘기랑 관계된 특성일 것 같은데.”
“내가 말해 줘야 하나?”
“아직 절 자식으로 생각하신다면.”
“너는 나를 엄마로 생각하는지 궁금하구나.”
“조금은요.”
[인물 ‘이수경’이 ‘거짓 간파 Lv.1’를 발동하였습니다!]
[‘이수경’은 해당 발언이 거짓임을 확인하였습니다.]
빌어먹을.
벌써 이 스킬까지 가지고 있다니, 내 어머니가 맞긴 맞군.
어머니의 표정에 미미한 비감이 서렸다. 그것이 연기인지 아닌지, 지금의 나로서는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아직도 나를 원망하고 있니?”
“그런 얘길 하러 온 게 아니에요.”
“네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었다.”
“알아요.”
세상에는 분명 ‘나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부류는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불법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가족의 생계를 위협한다.
그러니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다.
나도 알고, 엄마도 알고, 한국의 법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었다고 해서, 당신이 한 짓이 옳은 일이 되는 건 아니에요.”
“더 나은 삶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야.”
“한국에 그런 ‘법’은 없어요. 어떤 이유로든 살인을 저지른 인간이 감옥에 가야 한다는 ‘법’은 있지만.”
“소설만 봐서 그런지 말은 잘하는구나.”
“내겐 현실이 더 소설 같았어요. 당신 때문에.”
이쯤 되면 이미 평범한 모자간의 대화가 아니다.
아마도, 이래서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야기를 하면 어떤 꼴이 될지 잘 알고 있으니까.
서로 어떤 상처를 주고, 어떤 상처를 받아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왜 찾아왔는지 알고 있죠?”
“글쎄.”
“피차 거짓말은 알 수 있는 상황이니까, 시치미떼는 건 그만두죠.”
어머니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죄수번호 406번 단 할머니 있죠? 나한테 빌려줘요.”
“······그 할머니보단 전우치를 배후성으로 가진 화신을 데리고 가는 게 좋을 텐데? 내겐 꽤 쓸만한 화신들이 많이 있단다.”
“전우치는 엄마 심복이잖아요. 그리고 그 할머니가 더 도움이 돼요.”
어머니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상대가 상대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런데 406번의 배후성은 어떻게 알았니?”
“말할 수 없어요.”
“너, 배후성을 알 수 있는 스킬이 있나 보구나?”
역시 어머니한테는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빌려줄 거예요, 말 거예요?”
“빌려주마. 대신.”
이어질 말이 조금 두려웠다.
어머니라면, 내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거래를 제안할 것이다.
희미한 미소를 지은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다음번엔 네 친구들도 소개시켜 주렴.”
나는 잠시 벙쪄서 다음 말을 찾지 못했다.
······제길.
완전히 한 방 먹었군.
나쁜 사람을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건,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제일 잘 하는 일이었는데.
“독자야. 현실을 똑바로 보렴. 허구가 현실이 되었다고 해도, 정말 허구를 현실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제4의 벽’이 격렬하게 흔들립니다.]
고작 말 몇 마디 들었다고, 세계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다.
확실히 알겠다.
내게 이 사람은, 내가 싫어하는 ‘현실’을 가장 강하게 상기시키는 사람이다.
“알겠니?”
[성흔. ‘자기 합리화 Lv.1’이 발동합니다.]
역겹다. 이제와서 엄마 노릇을 하려는 저 태도가.
모든 것을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많은 강을 건너 와버렸는데.
[‘제4의 벽’의 흔들림이 잦아듭니다.]
더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맞아. 나는 ‘허구를 현실처럼’ 생각해요. 왜냐고? 줄곧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
“당신 눈엔 그게 한심해 보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건 알아둬. 난 적어도, 당신이 그랬듯 ‘현실을 허구처럼’ 팔아넘기지는 않아.”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천막을 젖히고 밖으로 나왔다.
서늘한 공기가 코트의 깃을 파고들었다. 단추를 여미며 앞을 보는데, 살짝 놀란 듯한 유상아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서 있었다.
“죄, 죄송해요······ 독자 씨가 너무 늦으셔서······.”
곤란하다.
아니, 곤란하기보다는······.
어쩐지 민망하다.
“······혹시 들었어요?”
유상아는 정말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작은 정수리가 보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걸을까요?”
우리는 용산역의 플랫폼을 따라 발을 맞춰 걸었다.
아까는 분명 찬바람이었는데, 그새 기온이 변했는지 뺨을 스치는 바람의 느낌이 달라져 있었다. 머리 감을 시간도 없었을 텐데, 흩날리는 유상아의 머리카락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숙취는 좀 어때요?”
“괜찮아요. 그런데 저 업고 오셨다고 들었어요. 죄송해요. 또 민폐만 끼쳤네요.”
“저 돌봐주시느라 그런 건데요 뭐.”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시죠? 왜 엄마랑 아들이, 저런 식으로 얘기하는지.”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긴.
세상에서 가장 이상하다는 표정인데.
“알고 싶어요?”
유상아의 눈빛이 한순간 흔들렸다.
“······실례가 안 된다면요.”
나는 옅게 웃었다.
그래, 이제 말할 때도 됐지.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허공에 숨을 한 번 뱉고는, 과장되게 비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를 죽였어요.”
이상하게도, 내 말은 우스꽝스럽게 들렸다.
내 입으로 말하는데도,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 같았다.
“그 죄로 감옥에 갔고요.”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저희 아버지······,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죽을 만한 사람이었어요. 가정 폭력에, 도박에, 보증에······ 우리 엄마 매일 맞으면서 살았거든요. 멍이 마르는 날이 없었어요. 나도 가끔 맞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엄마가 결심을 했고, 일이 터진거죠.”
“아······.”
“회사에서도 꽤 소문난 줄 알았는데, 유상아 씨는 모르셨나 봐요?”
유상아는 대답이 없었다.
뒤늦게 그녀는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건드리면 안 될 상처를 건드렸다는 것을.
“이제 더 이상하게 느끼고 계시죠? 법적으론 분명 잘못했지만, 그런 어머니를 제가 왜 미워하는지, 심정적으론 이해하지 못하시겠죠.”
“아니에요! 제가 독자 씨가 아니라서 완전히 이해는 못해도······.”
“솔직히 제가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죠?”
유상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건드린 상처는 이미 터졌으니까.
나는 어색한 침묵이 차오를 때쯤 다시 입을 열었다.
“『지하살인자의 수기』라는 책, 혹시 알아요? 예전에 교보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적도 있는데.”
갑자기 나온 책 이야기.
유상아는 화제가 바뀌었다고 생각했는지, 살짝 반색하며 말했다.
“들어 본 거 같아요. 아마 굉장한 베스트셀러였죠?”
“학대당하던 여자가 남편을 죽인 후 감옥에서 쓴 에세이죠. 당시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았어요. 에세이 문학에서 한국판 ‘지하생활자의 수기’가 나왔다면서요. 물론, 완전히 과대평가지만.”
거기까지 듣던 유상아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녀는 눈치챈 것이다.
화제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맞아요. 우리 엄마가 쓴 거예요.”
유상아의 입술이 작게 벌어졌다.
“지금도 생각나요. 집 앞에 기자들 잔뜩 찾아왔던 거. 그 에세이가 모두 진짜냐면서 묻던 그 말들, 전부.”
“······.”
“반 친구들이 했던 말들도 하나하나 다 기억해요. 너네 엄마, 살인한 거 팔아서 돈 벌고 있냐고.”
“독자 씨······.”
“친척들도 말했어요. 대체 네 어미는 살인범이 무슨 낯짝으로 신문에 얼굴을 들이미는 거냐고.”
뭐라 말하려 하던 유상아가 입을 다물었다.
“조금 힘들었어요. 그것 때문에. 아니, 어쩌면 꽤 오랫동안.”
“······.”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것까진 견딜만 해요. 하지만, 그게 이야기가 되어 팔려 나가는 건 다른 종류의 문제에요. 내 삶이 누군가에 의해 돈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요.”
나는 하늘을 보았다.
아직 밤이 아닌데도, 저 먼 성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느껴졌다.
아마 이것도 그들에겐 이야기가 되고 있겠지.
그러나 어떤 성좌도 지금만큼은 내게 후원을 하지 않았다.
그걸 내가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알 수 없었다.
“아직도 내가 어머니를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답은 바라지 않는다.
애초에 이해를 바라고 한 말이 아니니까.
어쩌면 이것은, 배배 꼬인 내가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온 유상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추악한 형태의 폭력이었다.
멋대로 자신의 불행을 전시해놓고, 누군가에게 불가능한 이해를 강요하는 일.
착한 유상아는 그것이 이해 불가능한 일임을 알기에 슬퍼할 것이다.
나는 혼자서 알 수 없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웃었다.
“미안해요. 사실 다 농담이었어요.”
“네?”
“다 거짓말이에요. 깜빡 속았죠? 그런 소설 같은 일이 있을 리 없잖아요? 엄마랑 나는 그냥 평범한 모자 사이고, 아빠는 그냥 어릴 때 사고로······.”
그리고, 작고 보드라운 뭔가가 내 손에 감겼다.
그 감촉이 너무나 포근했기에, 나는 순간 하려던 말을 잊고 말았다.
잠시······ 아주 잠시, 걸음이 멈췄다.
유상아는 나를 보지 않고 있었다.
그랬기에, 나 역시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마주보지 않은 채로, 손을 잡은 채 걸었다.
마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졌다.
[‘제4의 벽’이 희미하게 흔들립니다.]
어쩌면, 너무나 현실적인 체온이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독자 씨!”
역의 입구에서 일행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서, 우리는 반사적으로 잡았던 손을 놓았다. 달려온 정희원이 물었다.
“뭐야, 또 둘이 키스했어요?”
“키, 키스요?”
“유상아 씨 얼굴 빨개지는 것 봐. 했네, 했어!”
확실히, 내가 유상아를 조금만 더 몰랐더라면 충분히 착각할 법한 표정이었다.
“그만 놀리세요. 정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예에, 어련하시겠어요.”
정희원이 나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이상한 할머니가 우리 찾아왔어요. 혹시 독자 씨가 부른 거예요?”
일행의 뒤쪽에서 지팡이를 짚은 노파가 걸어 나왔다.
“흘흘, 이 늙은 몸이 무슨 쓸모가 있다고······.”
할머니는, 엄마의 그룹에 소속된 다른 방랑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색 수감복을 입고 있었다.
죄수번호 406번.
역시, 엄마는 일처리가 빠른 사람이다.
“그쪽 젊은이가 김독자인가?”
“네, 접니다.”
“수경 씨한테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잘 부탁함세.”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수경은 엄마의 이름이다.
나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제가 부른 분이 맞습니다. 이제 출발하죠.”
우리는 곧장 용산역을 나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갔다. 이미 그곳에는 유중혁 일행을 포함한 왕들이 모여 있었다.
[그레이트 홀]을 통해, 새하얀 백색의 수정이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휘황한 빛을 뿌리는 수정.
[워프 크리스탈].
이것이 바로, 우리를 다음 시나리오 지역으로 이동시켜 줄 아이템이었다.